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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나님 중심의 신학이다.
개혁주의에서 이해한 신학의 중심적 주제는 인간이 아니고 삼위일체 하나님, 즉 만물의 창조주이시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심을 나타내시는 하나님, 성령으로써 주가 되시며 생명을 주시고, 선지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위대한 칼빈 연구가 뚜메르구(Emile Dounergue)는 주장하기를, 칼빈은 그의 신학저작에 있어서 하나님 중심(떼오센트릭, Theocen -tric)이었고, 그리스도 중심(크리스토 센텍, Christocentric)이 아니었다고 하였다. 물론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기독교 신학에 있어서 중심적 중요성을 가진다. 기독교의 기본적 신조인 니케아 신조는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기독신자는 하나님 자신을 만난다고 밝히 말한다. 나사렛 예수로 성육하셨던 성자 없이는 우리의 성부와 성령에 대한 지식은 가장 산만하고, 기독교적이 되지 못할 것이다. 구속의 하나님은 창조하는 하나님이요, 생명을 주시며, 선지자들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우리 신앙의 객체가 삼위일체 하나님이라는 주장은 개혁주의 신학의 특징이다. 기독신자가 예배하는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주 하나님이시며, 위로를 주시는 성령이시며,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 백성을 만나시며 구속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개혁주의 신앙의 하나님 중심 성격은 자아실현의 모든 윤리를 반대하며, 인간 영혼의 구원에 대한 과도의 관심에도 반대하며, 개인의 주체 관계에 과분의 선입관도 반대한다. 인간의 최후의 사실은 하나님과의 인격적 만남이라는 것을 칼빈주의는 확신한다. 개혁주의 신학은 하나님의 존엄과 영광을 강조하는 동시에 하나님의 초월성을 경험하는 경건을 가진다. 개혁주의 신앙에 하나님은 내재와 초월을 겸유하시는 살아 계시는 하나님이시다.
2. 성경의 신학이다.
개혁주의는 언제나 성경에 열정적이다. 쯔빙글리는 기독교 복음의 전체적인 국면을 전달하려고 성경의 모든 책에서 설교하는 노력을 기울였던 개혁자였다. 그는 인문주의 학자로서 가졌던 기술을 다 이용해서 성경 본문에 여자적 본질적 의미를 해석한다. 칼빈도 성경적 신학자가 되기를 원한 것은 틀림없다. 그는 자칭하기를 "나 칼빈은 제네바교회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의 사역자"라고 하였다. 개혁자로서의 칼빈의 저작들이 가지는 놀라운 특색은 주석가로서 그리고 조직신학자이자, 설교자로서의 세 가지 영역에 관심이 종합적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와 같은 종합은, 그가 모든 신학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있어야 하고, 신학은 실제적 학문이라는 확신을 가진 것에 기인한다. 리스트 같은 사람은 칼빈주의 신학은 성경 본문과 설교 중간에 위치한다고 그의 논설 "칼빈의 신학적 방법의 현대성"에서 말하고 있다.
신학, 설교, 주석의 상호작용은 칼빈으로 말미암아 용의주도하게 시도되었고, 계획적으로 발전되었다. [기독교 강요] 1539년판 서문에서 칼빈은, 강요의 목적은 학생들에게 성경에 대한 준비를 시키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렇게 [기독교 강요]는 주석을 읽고 연구하는 일에 의도적으로 관련시킨 것이다. 이 목적은 [기독교 강요]의 판을 거듭할수록 더욱 강조되었다. 1560년 불어판 서문에 그는 이 [기독교 강요]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성경을 잘, 그리고 바르게 이해하는 길을 열어주는 열쇠가 되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칼빈은 [기독교 강요]의 판을 거듭하는 동안에 성경주석을 계속해서 썼고, 또 설교도 하였다. 요한2, 요한3서와 요한계시록을 제한 신약 전체와 모세오경, 여호수아서, 시편, 이사야서, 에스겔서, 다니엘서, 예레미야서, 아가서, 소선지서들의 주석을 다 냈다. 그러므로 그의 [기독교 강요]가 신학적 논쟁의 결과라든가 신학적 일치나 완성의 필요에서 온 결과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예를 들면, 예정론은 칼빈이 요한복음 연구의 결과를 확대한 것이고 그 제목 논쟁 때문에 된 것은 아니다.
신학은 성경말씀을 밝히는 임무가 있다. 신학은 성경의 말씀들을 반복하는 것으로만 되지는 않는다. 그래서 칼빈의 신학은 첫째로, 성경 전체에 대한 주석이라고 할 수 있고 둘째로, 교회가 신학과 신조로서의 성경을 읽는 방법을 주석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신학은 특별한 상황의 용어로서 성경의 말씀을 밝히고, 그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칼빈이 성경을 "더 분명한 말"로 설명한다는 것은 실제로 인간문화와의 대화 속에서 중세신학과의 논쟁에서 그 성경을 설명한다는 것이다. 칼빈은 그 당시의 인문주의 문화에 참여하였으며, 그가 쓴 신학의 문맥은 이 사실을 반영하고 있다. 벤세리우스는 칼빈이 그의 신학저작 속에 시를 얼마나 잘 사용했는가를 말해주고 있다.
그러나 신학은 단순히 성경을 알기 쉽게 하는 임무만을 갖고 있지 않고 성경의 말씀을 체계화하는 임무도 있다. 이것은 사실상 칼빈에게는 큰 관심사였다. 칼빈은 [기도교 강요] 1551년판 서문에 그가 자기 신학의 배열을 끝내지 않고는 만족하지 않았고, 다음과 같은 확신을 가지고서야 비로소 만족했다.
"…나는 모든 부분에 있어서 종교의 전체를 포함시켰고 이렇게 순서를 배열했다. 그래서 누구든지 그것을 바로 파악만 하면 성경에서 특히 무엇을 찾아야 할 것을 결정짓는 것과 왜 내용들을 관련시켜야 하는가를 아는데 어렵지 않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칼빈은 [기독교 강요]속에 체계, 즉 그의 주석들에 빛나는 기독교 신앙과 일치된 진술을 마련한 조직신학자였다. 칼빈이 성경을 사용한 또 하나의 특색은 성경 자체의 정경을 강조한 점이다. 칼빈은 그가 특히 좋아한 성경이 있는데 로마서, 시편, 마태복음, 요한복음, 고린도전서, 창세기 등이다. 그러나 그의 신학은 성경 전체 위에 세우려고 노력했다.
16세기 이래로 개혁주의 신학자들은 성경의 신학자가 되기를 원했고, 또 사실도 그랬다. 개혁주의 신학은 언제나 철학적인 것보다는 성경적이었다.
마치 사변적인 것보다는 실제적이었던 것과 같다. 저들은 성경번역 사업에 앞장섰고 성경의 본문연구와 성경주석에 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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