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therapy

[스크랩] 치료(치유)사역의 기독교 신학적 의미

Papa Kim 2008. 6. 25. 04:01

  치료(치유)사역의 기독교 신학적 의미

  

  교회에서 흔히 말하기를 구원을 받으면 한 순간에 그 사람의 성품이나 인격, 정서적인 면의 모든 문제까지 다 해결되는 것처럼 가르치고 믿게 한다. 이는 신앙의 왜곡을 야기시키는 많은 문제를 일으킨다. 죽어서 천국 가는 구원만 강조하기 때문에 이 땅에서의 주의 사명을 이루면서 주 안에서의 새로운 피조물의 삶을 너무 등한시 여기게 하고, 오랜 기간 교회 생활을 하면서도 예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서 변화되고 성장하지 못한 안타까운 모습이 드러나고, 조그마한 갈등이나 상처를 입어도 쉽게 믿음을 잃어버리고 교회 공동체를 원망하고 나아가 예수님을 떠나 버린다.

  그러기에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에게 심각한 인격적, 정서적 문제가 있다는 것을 부인한다. 또한 그리스도인으로 성령 충만하면 이러한 모든 문제는 자동적으로 해결된다고 생각해 버리기에 자신의 가슴 아픈 상처들을 계속 억누르거나 은폐한다. 아니면 자유하지 못한 심령 때문에 죄책감에 시달리며 자신을 학대하면서 보낸다. 그러나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을 삶의 밑바닥에 깔리게 되고, 후에는 병적인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신체의 병리적 증세, 공동체 안에서의 갈등과 부적응으로 미성숙한 모습을 나타낸다. 

  여기에 한국교회는 전통적으로 모이는 형태가 대그룹이든 소그룹이든 인도자가 말하고, 나머지는 주로 듣는 예배 중심이다. 그러다 보니까 겉으로는 경건하고 주를 믿는 자로서 기쁨을 누리는 것 같은 데, 내면의 인격과 정서를 주님께 치료(치유) 받지 못함으로 성장이나 성숙이 이루어지지 않는 바리새인의 믿음을 소유한 사람만 양상하게 되는 꼴이 되었다. 또한 전통적인 목회의 사역 대부분이 어린아이가 울면 젖병을 물리는 일시적 돌봄이 미성숙한 성인아이로 만들었다. 이같이 변화와 성숙하지 못한 믿는 자의 아픔과 안타까움 속에 치료(치유)의 중요성이 있다. 

  우리는 ‘치료(치유)’라는 말을 들으면 아파 누워있던 사람이 신앙의 힘으로 벌떡 일어서는 기적부터 연상한다. 조그마한 능력이라도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을 하나님이 특별히 택했다고 믿고 날뛰곤 한다. 반면 그런 능력도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신을 열등하게 생각하거나 치료(치유) 자체를 거부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치료(치유)는 선택받은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은사가 아니라 신앙인이면 누구에게나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다. 신앙인들이 가장 중하게 생각하는 문제는 구원이다. 구원은 추상적인 용어가 아니라 가장 구체적인 사건이다. 영과 정신과 육신이 함께 살아나는 일이요, 치료(치유)는 상처 입고 병들었던 영, 정신, 신체, 사회구조, 자연이 건강하게 살아나는 것을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사역의 세 가지 사역(선포, 가르침, 치료(치유))에서 치료(치유)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많은 관심을 보이셨다. 치료(치유)의 온전한 사역을 원한다면 인간이해가 너무 중요하다. 인간은 기계가 아니라 사람이기 때문이고 또한 신학적인 ‘인간은 죄인이다.’라는 이해는 피상적이고 문자적인 이해로 끝나기 쉽다. 사람의 상처나 문제는 그 이면(life history)을 바로 볼 때 그 사람을 이해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사회과학적인 심리학적 인간이해는 꼭 필요하다. 이러한 인간이해는 병의 요인과 증상을 찾게 하고, 또한 인간은 치료(치유)가 필요한 존재임을 바로 아는 것이 치료(치유)사역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말한다. 

  우리말에서 ‘치료(치유)’란? ‘치료에 의하여 병이 나음’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이 ‘치료’라는 개념은 주로 ‘병을 다스리기 위하여 하는 의학적 처리’를 의미한다. 그런데 병이라고 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신체적 질병과 정신적인 질병을 포함하는 것이며,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볼 때는 여기에 영적인 질병까지 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에, 이 ‘치료(치유)’라는 말은 원래 넓은 개념의 용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은 육체뿐만 아니라 육체의 정신과 영의 합일체로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존재(창 1:26)로 이해하기 때문에 기독교에서 치료(치유)란 인간이 육체적, 정신적, 영적 혹은 사회적인 질병으로부터 회복되어 창조 당시의 하나님의 형상과 창조의 질서대로 온전케 되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외적 병뿐만 아니라 구원까지 포함한 전인차원의 건강 즉 전인건강의 상태를 말한다.

  폴 틸리히는 ‘구원은 근본적으로 그리고 원칙적으로 치료이다. 다시 말하면 꺾어지고 와해되어진 것을 성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질병 자체보다는 질병으로 인하여 일어나는 환자 내부의 책임과 환자와 관련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사회적인 문제 그리고 질병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환자의 영적인 필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래서 그는 육체적, 정신적 질병에서의 치료(치유)와 영적인 죄악에서의 구원을 구별하지 않는다. 그에게 있어서 진정한 치료(치유)는 결함과 침해 그리고 왜곡으로부터 온전히 만드는 또한 다시 회복시켜 기능적 불완전을 질병의 발생 이전보다 더 발전한 단계로 올려놓는 것이며, 영적, 육체적, 정신적인 즉 전인적인 구원과 회복을 통하여 하나님이 창조한 처음 형상대로 회복되는 것을 의미한다. 

  튜니어(P. Tournior)는 ‘진정한 치료(치유)란 몸, 정신, 영혼의 합일로 이루어지며, 치료(치유)와 구원은 연합된 상태’라고 말한다. 그는 엘룰 교수의 말을 인용하면서 ‘치료(치유)는 언제나 육체적인 동시에 영적이다.’라고 하였다. 그는 단지 질병의 회복단계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질병의 회복 이후 계속적인 삶의 자세에까지 연관시켜 하나님 앞에서 헌신자의 삶을 사는 것을 완전한 치료(치유)로 보고 있다. 힐트너 교수는 ‘치료(치유)란 단지 육체적인 질병에서 회복되는 것만으로는 온전한 치료(치유)라 할 수 없다. 치료(치유)란 온전하게 만드는 일, 다시 회복되는 일을 말한다. 여러 가지 면에서 손상 입었던 기능적 불완전성을 다시 회복하여 회복 이전 단계보다 한 단계 더 발전된 상태로 회복시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하였다. Lawrence는 ‘치료(치유)는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물리적, 정신적, 그리고 영적 법칙들과의 올바른 관계 속으로 인도하는 일’이라고 하였고, Graham은 치료(치유)를 가리켜 ‘육체적 건강(bodily wholeness), 정서적 안정(emotional well-being), 정신적 순기능(mental functioning), 그리고 영적 활기(spiritual aliveness)를 회복하는 과정이라고 하였다. 

  결론적으로 치료(치유)란? 누워있는 환자가 일어나는 것을 말하는 것뿐만 아니라 마음과 영과 신체의 모든 면에서 긍정적인 변화를 모두 내포하는 것이다. 이는 바로 전인건강을 말하는 것이다. 

  

- 하진만(2006). 치유목회의 필요성과 소그룹 상담을 통한 치유. 장로회신학대학교 목회전문대학원 석사학위 청구논문 중에서- 

출처 : 한국기독교아트테라피스트협회
글쓴이 : null 원글보기
메모 :